본문 바로가기
게임과 서브 컬쳐/Report : 감상문

감상문 #17. NDC 2014 : 나는 디지털 시대의 주체일까? 주변인일까? 인터넷게임 중독 논쟁과 디지털 주체

by 몽묘 2025. 8. 9.

<발표 다시보기 링크>  https://ndcreplay.nexon.com/NDC2014/sessions/NDC2014_0102.html#c=NDC2014&t%5B%5D=%EA%B2%8C%EC%9E%84%EA%B8%B0%ED%9A%8D

 

발표 제목 : 나는 디지털 시대의 주체일까? 주변인일까? 인터넷게임 중독 논쟁과 디지털 주체

발표 연도 : 2014년


발표자 1 :  김지연 / 현 고려대학교 과학 기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박사 / 전 게임물등급위원회 위원 / 카톨릭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 교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한양대학교 강사

* 해당 란은 2014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발표내용>

 

 

발표자는 과학기술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하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발표자는 인터넷 게임 중독 논쟁을 10년 이상 지켜보았으며, 이 논쟁은 기술 낙관론과 기술 혐오가 극단적으로 대립한 사건이지만,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관한 과정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발표자는 이 논쟁을 통해 기술과 인간의 상호적 위치를 정립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논쟁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필요성을 이야기하려 한다.


 


기술에 대한 관점은 크게 도구주의, 기술결정론, 구성주의로 나눌 수 있다. 도구주의는 근대 이성과 합리주의에 기반하며, 기술을 인간이 창조했으므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는 기술을 단순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며, 사회와 문화는 기술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의도에 의해 변화한다고 본다. 따라서 도구주의는 낙관론적 성향이 강하며, 기술을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들은 기술이 가져올 부작용은 인간의 올바른 사용과 정책을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다.

반면, 기술결정론은 산업혁명 이후 거대한 기계와 대규모 공장이 등장하며, 기술이 인간의 생활양식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우려에서 출발했다. 이 관점에서는 기술이 독립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전하고 확산된다고 본다. 특히,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거나 종속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관론적 성향을 띠며, 이를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비유한다. 기술결정론자들은 기술 발전이 가져올 사회적 문제와 위험을 경고하며, 기술의 진보가 곧 사회의 진보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도구주의와 기술결정론은 상반된 태도를 보이지만,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인간 혹은 기술 어느 한쪽에 귀속시킨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기술과 인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느 한쪽에만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구성주의 관점이다. 구성주의는 인간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형성한다고 본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가치관을 기술에 투사하고, 이러한 기술은 다시 인간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변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인간 정체성과 사회 구조의 일부로 작용하며, 인간과 기술은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이보그적 상태’에 놓이게 된다. 사이보그는 단순히 영화 속 기계 인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실험용 쥐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인간처럼 기술과 물리적으로 결합하거나 규율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를 포함한다. 구성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기술과 결합된 사이보그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회 변화가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은 겉보기에는 명확해 보이지만, 개념 정의와 인과적 증명 측면에서 최소 두 가지의 심각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 첫째, 개념 정의상의 문제다. 미국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중독(addiction)’이란 본래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인체에 섭취하거나 주입되는 물질에 대한 의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터넷 게임 중독은 물질이 아니라 ‘행위’에 기반한 의존이며, 이는 기술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외부적 상호작용이다. 즉, 중독이라는 용어의 전통적 정의와 행위중독은 구조적으로 어긋난다. 인간의 신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화학적 변화가 아니라 외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행동이기 때문에, 행위중독이라는 개념은 기존 의학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인과관계 증명에서도 취약하다. 어떤 상태를 ‘중독’이라 부르려면 특정 원인이 일반적으로 일정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상관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 이용 시간과 사회적 적응 수준 사이의 뚜렷한 인과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게임 이용 시간이 많으면 사회 적응도가 낮다’는 가설이 실증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인터넷 게임 중독 척도는 신뢰성과 타당성이 낮고, 기준 또한 임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결국,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는 엄밀한 의학적 개념이라기보다 은유적 표현에 가깝다. 책 중독, 연애 중독처럼 주의를 환기하거나 강조의 효과를 노리는 문학적 용어라는 것이다. 은유가 사실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는 않더라도, 강한 통찰과 함축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가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용어가 사회적으로 확산된 과정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진행됐다. 심리학과 교육학 분야의 국내 연구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정부 역시 인터넷 역기능을 주제로 한 사업을 추진, 2001년에는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건전한 정보문화 확산과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2002년부터 정기적인 실태 조사가 이어졌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중독’은 법률 용어가 아니었다. 그러나 2006년경 정부와 언론이 ‘중독’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여러 독립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비록 근거 부족으로 단독 법안 제정에는 실패했지만, 2009년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0조에 ‘인터넷 중독’이 공식 정의로 포함되었다. 이는 물질남용장애의 정의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한 조항에 불과했지만 강력한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후 한국정보화진흥원은 매년 보고서를 발간하며 인터넷 중독 관련 사업을 주관했다. 흥미롭게도 보고서에서는 ‘학계 합의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법률에 명시된 이상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 진단과 예방 사업이 지속되었다. 진단 결과는 매년 10% 내외의 국민이 인터넷 중독이라는 수치로 발표되었고, 이는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며 대중의 인식에 깊이 각인되었다. 결국, ‘인터넷 게임 중독’은 학술적·의학적 타당성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법률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를 모두 획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집약적 결과가 2011년의 ‘셧다운제’ 통과였으며, 이는 은유로 출발한 개념이 제도와 규제로 현실에 강력히 작용하는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보통 새로운 용어나 개념이 사회에 자리 잡는 과정은 과학적, 의료적 합의가 먼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사회적 승인, 마지막으로 법률적 지위를 얻는 순서로 진행된다. 그러나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는 그 경로가 역전되었다. 먼저 법률적으로 승인되고, 이어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여전히 의료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매우 성급한 결정이었다. 이러한 성급한 결정이 가능했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가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아무런 반대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경에는 ‘인터넷 과몰입’이라는 대안적 용어가 제기되었다. 이 개념을 주장한 연구자들은 ‘게임 중독’이라는 표현이 개인적, 병리적 증상을 전제로 한 해석이어서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대신, 기술 행위를 사회적 행위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문화부에도 영향을 미쳐, ‘게임 과몰입’을 법률적 용어로 채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미 ‘인터넷 중독’이라는 표현이 국가정보화기본법에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제동이 걸렸다. 결국 ‘과몰입’이 ‘중독’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고, 두 용어가 병존하는 형태로 타협되었다.

‘과몰입’이 ‘중독’을 대체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과몰입 주장자들은 중독 개념의 취약점을 정확히 지적했지만, 독자적인 분석 틀을 구축하지 못했다. 진단 기준도 기존의 중독 모델에서 항목을 차용했으며, 용어 정의 역시 통일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영어 표기를 ‘Addiction’으로 사용하다가, 이후 ‘Indulgence’, ‘Overindulgence’, ‘Overflow’, ‘Overuse’ 등 다양한 표기를 혼용했다. 이는 응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중독' 용어 사용자와 '게임 과몰입' 용어 사용자는 모두 새로운 기술, 사회적 변화를 감지했고, 이를 개념화하여 사회적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기여했다. 중독 용어 사용자는 인터넷 게임 기술이 단순한 도구에 머물지 않음을 경고했고, 과몰입 용어 사용자는 그 오류를 지적하며 대체 가능한 해석 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렇게 두 진영 모두, 비록 용어 정의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새로운 현상을 해석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리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담론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과학적 합의 없이 성급히 확산된 용어가 아니라, 기술혐오와 결합해 빠르게 사회적·법률적 정당성을 확보한 사례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임은 기술 정책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민주적 검증 과정을 약화시키고, 국가가 기술 의제를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기술혐오를 단순한 거부 반응이나 무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기술이 시민들의 생활 리듬과 의사결정 속도에 맞춰 흡수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회적 신호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인터넷을 포함한 첨단 기술이 국가 주도로 급속히 도입되면서 시민들이 기술을 자기 맥락에 맞게 이해하고 조정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그 결과, 새로운 기술이 나타날 때마다 시민들은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국가에 해결을 요구하게 되었고, 국가는 ‘게임 중독’과 같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해법을 제시해 그 요구를 수용하는 듯 보였다.

이러한 병리적 접근은 기술 이용자를 ‘환자’로 고정시켜, 능동적인 기술 활용자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기술 사용의 맥락은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이므로, 이를 단일한 원인과 결과로 환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왜곡한다. 따라서 기술 사용자를 정책과 의사결정 과정의 주체로 포함시키고, 기술의 위험과 가능성을 함께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이 기술 변화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으며, 사회는 병리적 규제 대신 민주적 조율과 창의적 활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비판적 담론 프레임 형성을 위해서는 먼저 기술 혐오 현상을 단순한 부정적 반응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것이 드러내는 기술의 결함과 결핍을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 기술비사용자나 반대자의 경험과 시각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이야기와 논의를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쌓여야 비로소 담론이 형성되며, 성공 사례 위주의 연구는 전문가들의 관심사에 머물 뿐, 사회 전체의 비판적 사고와 대안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술 발전의 긍정적 면모뿐만 아니라 혐오와 비사용의 원인, 양상, 결과를 심층적으로 조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국가와 시민(부모) 간의 관계에서 나타난 의사결정 권한의 역전 현상은 바로잡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영화와 게임 등급제가 부모의 판단보다 국가의 판정을 우선시하며, 부모가 자녀의 콘텐츠 이용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18세 영화는 부모가 동반하더라도 청소년이 관람할 수 없고, 게임 등급제 역시 연령 제한을 강제해 부모의 허락 여부를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부모의 계정을 이용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법적으로 허용된 정당한 경로가 아니라 ‘뒷문’을 이용하라는 것과 같으며, 시민의 의사결정 주체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이러한 상황은 오랜 기간 제도와 문화 속에서 학습, 내면화되어 왔기 때문에, 셧다운제와 같은 규제가 등장했을 때 부모나 시민이 문제 제기를 주저하는 원인이 된다. 국가는 시민의 부족한 판단 능력을 보완할 수 있지만, 이를 전제로 시민의 권리를 대체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 평균적인 판단 기준은 어디까지나 참조용일 뿐, 개별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은 현장의 당사자가 내려야 한다. 획일적 국가 결정이 시민의 판단을 대신하게 되면 사회의 다양성과 자율성은 위축되고, 새로운 기술 환경에 맞설 수 있는 유연한 대응 능력이 약화된다. 결국 게임 중독, 셧다운제, 인터넷 중독과 같은 문제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동안 형성해 온 국가, 시민 관계 구조와 민주적 의사결정 역량의 문제와 깊게 얽혀 있다.

 

한편, 기술에 대한 비판 의식을 행사하는 디지털 주체의 자리가 비어있다. 이 디지털 주체는 인터넷과 게임 같은 디지털 기술과 대응하며, 그 자리가 비어 있어 인터넷 중독 해석으로 대신 채워졌다. 따라서 디지털 주체에 대한 연구와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터넷 게임이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문제 제기 역시 자아와 주체성 문제와 연결되며, 이 논의는 모두가 함께 출발할 수 있는 공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서구 문화에서 자아는 근대 사상과 함께 등장했고, 개별 인간의 몸 안에 담긴 내용물로 여겨졌다. 만약 자아가 내용물이라면, 이를 다른 몸이나 기계로 전송할 수 있다는 상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자아는 스스로 식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오래되었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는 나 자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상징한다. 정신의학자 라캉은 주체가 꿈속에서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직접 자신을 볼 수 없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이 단계에서는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식별이 어렵고, 자아에서 주체로 넘어가려면 타자에 의해 발견되어야 한다. 주체는 타자와 상징적 관계망 속에서 위치 지어지는 존재다. 근대 주체 개념은 자아가 몸 안에 내재한다고 보지만, 현대 철학과 정신의학은 자아가 외부 이미지와 타자에 의해 구성된다고 본다. 인터넷 중독 주장은 자아가 내부에 고정돼 있고 외부 기술이 이를 위협한다고 보지만, 사실 자아는 외부와 상호작용하며 정체성이 확립된다. 따라서 인터넷 중독 개념을 넘어서려면 자아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자면, 주체는 본질적으로 스스로 완전하게 인식할 수 없는 존재다. 자아가 내면에 온전히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거울 속 자신의 모습, 타인의 시선, 사회적 상징체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후적 산물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우리는 엄마의 얼굴, 친구나 연인의 시선, 때로는 적대자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이 이미지들의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나’라는 앙상블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이 앙상블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결핍되어 있으며,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체성의 조각들, 멋진 자동차, 높은 사회적 지위, 완벽한 이론이나 기술을 욕망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타자, 즉 새로운 사람이나 기술, 문화가 등장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관심과 열광을 보인다. 이는 새로운 타자가 나에게 비춰주는 ‘나’의 다른 모습, 확장된 정체성의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 특히 인터넷 게임과 같은 새로운 상징계는 주체에게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를 제공하며, 주체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장하거나 재구성할 기회를 얻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디지털 상징계 역시 결핍과 부재를 내포한다. 빅데이터와 같은 정보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인간 주체를 완전하게 재현하거나 대체할 수 없으며, 이 과정에서 왜곡이나 변형도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디지털 주체가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인식하고, 이 부재를 이해하며, 그 안에서 윤리적이고 능동적인 행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기술 발전 과정은 빠른 도입과 확산에 집중했지만, 정작 시민들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인식하고, 기술과 상호작용하며 능동적으로 주체성을 형성할 여유와 교육은 부족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 중독’과 같은 병리적 프레임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디지털 주체 형성의 빈 공간을 부정적인 해석으로 채운 결과이기도 하다.

 

인터넷 게임은 복잡하고 거대한 디지털 세계를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험장’ 역할을 할 수 있다. 게임 내에서 경험하는 상호작용과 규칙들은 보다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인 빅데이터 환경과 달리 눈에 띄게 드러나며, 이를 통해 디지털 상징계와 주체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탐구하고 교육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주체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상징을 매개로 구성되는 존재이며, 이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디지털 시대의 윤리적 주체 형성이 출발한다. 앞으로도 이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건강한 디지털 사회와 주체 형성이 가능할 것이다.

 

 

 


<발표 감상평>

 

자아, 주체, 이런 개념이 나올 때는 내 이해력이 살짝 아찔해지는 발표...

하지만 중심이 되는 안건은 짧게 세 줄 요약이 가능할 것 같다. (쓰고 나서 본건데, 세 줄은 넘었다! 그렇지만 세 문장이 되었으니 OK)

 

게임 중독이라는 표현은 빠른 기술의 도입과 기술 혐오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학술적 논의 없이 정부가 개념화한 단어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시민의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장치이며, 기술에 대한 주체성을 기르는데 방해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게임 중독은 기술에 대한 비판을 행사하는 디지털 주체의 자리를 빼았고 있으며, 기술 혐오를 발생하는 기술의 결함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시민이 기술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자아)을 확실히 하는 것에서, 건강하고 윤리적인 디지털 주체의 형성이 시작된다.

 

현재 대한민국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발표 당시인 2014년과는 많이 달라졌다. 더 이상 게임 소비자들은 정부가 제시한 게임에 대한 기준들을 따르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시가, 2022년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차별 검열과,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민원, 여론 참여로 인해 일어난 감사. 기술에 대한 비판 의식을 행사하는 디지털 주체의 자리를 정부가 아닌,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여준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 주체의 자리를 시민이 가지고 있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시민이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것, 기술과 상호작용할 것, 능동적으로 주체성을 형성할 것이다. 위의 사건에서 해당하는 것은 '기술과 상호작용'한다는 부분이 빠져있다. 위의 사건을 예시로 들면, '게임을 할 권리(의사결정)'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 물론 이것은 현재 상황에서 법적인 한계가 있으니 넘어가자. 게임에 대한 확률 고지를 원한다던가, 게임에게 다양한 것들을 건의하거나... 시민이 게임에게 향하는 작용은 명확하고, 종류와 반응의 크기도 급증하는 추세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상호작용이라면, 게임이 시민에게 작용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 만약 시민은 게임에게 작용하고 있지만, 게임이 시민에게 작용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주체가 시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떻게 시민에게 작용할 수 있는가? 게임을 가장 단순한 개념으로 다시 정의내려보자, 게임은 오락을 위한 상품이다. 오락에는 재미가 따르며, 상품에는 후기가 따른다. 재미는 자극에서 기반하며, 후기는 경험에서 기반한다. 우리는 어떤 자극(What)을 주고, 어떻게 경험(How)하게 하느냐를 고민하며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유의미해야 한다."너 오늘 수업 들었어?"라는 질문에 "씨없는 수박은 1개에 3만원"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대화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소비자가 유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는 자극과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은 게임을 만든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이것은 게임의 장기적인 이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AS센터에 갔을때 기계 같은 상담원보다는, 인간적인 상담원을 더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극은 결과다. 자극이 의미가 있으려면, 적합해야하며, 명확해야한다. 게임은 게이머들이 좋아할 수 있는 자극들을 준비하며, 그것이 시사하는 바가 모호하지 않아야 한다. 타겟이 될 소비층이 분명해야하며, 소비층이 원하는 자극을 느끼게 해주고, 자극과 함께 게임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경험은 과정이다. 경험이 의미가 있으려면,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결과가 있어야 한다. 게임은 게이머들의 선택에 영향을 받으며, 다양한 변화를 겪을 수 있어야 한다. 일종의 스노우 볼과 같은 관계,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참여된 결과가 누적되었을 때, 플레이어와 게임에서 서로 의미있는 것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한다.

 

오랜만에 쓰는 감상문이라, 게임 제작이나 재미와 관련된 내용을 듣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없어서 아쉽다.

그래도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느낄 수 있어서 다이죠부쟈나이. 쓰면서도 어질어질하긴 하지만.